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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을 이끄는 여신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는 다양한 중세시대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역사적 배경이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모나리자 말고도 봐야할 명작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프랑스의 자유로운 정신을 눈앞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여신"은 1830년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이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 7월 혁명의 상징이 되었고, 프랑스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을 통해 혁명의 열정과 자유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인물로 여성을 선택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마리안느라는 여성으로, 프랑스 국민과 자유의 상징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파리의 거리이고, 거리는 혼란과 혁명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리안느는 파리의 거리를 연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로 두려움, 분노, 자유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녀의 옷은 영웅적인 움직임과 함께 날아가고, 그녀의 눈은 자유에 대한 열망과 결의를 보여줍니다. 그 주변에 혁명군들이 모이고, 그들은 거리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무기와 깃발을 들고 다닙니다. 들라크루아는 혁명의 힘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의지를 묘사합니다. 그것은 당시의 정치적인 분위기와 혼란을 포착하고, 프랑스 국민들의 투쟁과 열망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예술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그 그림은 혁명의 상징으로 평가될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와 기술적인 우수성으로 평가됩니다. 들라크루아의 화풍은 다채롭고 역동적이어서, 색채와 조명을 통해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그것은 프랑스 현대 미술의 미학적 전통을 이어가면서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주며, 프랑스 현대 미술의 걸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륙을 정복한 왕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담아냅니다

     이 그림은 1804 12 2일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은 1804년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에 의해 그려졌는데, 이것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의 즉위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작품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첫째, 중앙에는 궁전에서 세련된 왕복을 입고 서 있는 나폴레옹 1세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는 오른손으로 로마 황제로서의 왕관을 머리 위로 올리고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둘째, 나폴레옹 주위에는 그의 아내 조세핀(Josephine)이 관복을 입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나폴레옹의 어머니 마리아 루이즈(Maria Louise)가 서 있습니다. 셋째, 또한 프랑스 국회의원들과 다양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황제로서의 나폴레옹 1세의 인정과 축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의 권력의 정점을 상징하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또한 프랑스 제국의 부활과 나폴레옹의 재정립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위대한 지도자로 묘사했고 프랑스의 영광과 국가의 안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은 다비드의 정치적이고 사실적인 화풍과 함께 색상과 빛의 섬세한 사용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섬세한 표현과 조각적인 특징들은 이 작품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듭니다. 그것은 프랑스 혁명과 제국 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하기 때문에 프랑스 예술의 걸작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현재 프랑스 루브르를 포함한 많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그것은 미래의 예술가들과 역사가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뒤로 물러앉아 고개를 살짝 돌리는 포즈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

    여인은 막 목욕을 마치고 나와 침대에 걸터앉았습니다. 두껍고 두꺼운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빛은 여인의 머리를 감싼 터번에 머물다 목덜미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퍼집니다. 여성이 비너스나 아테네 등 여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는 나체로 나타나는 것이 불가능했던 19세기 신고전주의 화풍에서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잉그레스(1780~1867)가 그린 '목욕하는 여인'의 주인공은 벗은 듯 여유로워 보입니다. 신고전주의 거장 다비드의 제자로 나폴레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801년 파리 아카데미의 '로마상'을 수상하며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로마 유학 시절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접한 잉그레스는 라파엘로의 화풍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붓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각품 같은 매끈한 형태와 고귀한 색채는 그의 화풍 속에서 완벽한 아카데미즘으로 구현됐습니다. 붓질을 통해 드러나는 여인의 단아한 모습은 정확한 퇴화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 잉그레스를 신고전주의 회화의 중심적 존재로 만듭니다. 스승인 다비드가 공적 이상과 고대 도덕적 가치에 무게를 둔 작품으로 신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형식미에 기여했다면 제자인 앵그레스는 고전주의를 따르고 개인적 취향을 드러내는 감성적인 여인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려 내용면에서 낭만주의와 타협했습니다. 28세에 앵그레스가 그린 뒤의 여인은 20년 뒤 48세에 그린 '어린 노파-인사이드 하렘'에서 다시 출연하고 35년 뒤 다시 83년 뒤로 돌아서는 노 화가의 그림 '튀르키예 목욕'에 등장해 세상의 주목을 받습니다. 이 여인은 20대 청년이 80대 노인이 되도록 60년 가까이 한 남자의 마음속에 간직해 온 영원한 북방인 독일인의 동상인지도 모릅니다.